디지털 전환, 인공지능, 자동화, 플랫폼 노동.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일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일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장애인에게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기술 기반 일자리의 가능성
기술은 장애인의 노동 참여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격근무 기술은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환경을 제공하며, 음성 인식·스크린 리더 기술은 시각이나 청각에 제한이 있는 이들이 디지털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프리랜서나 크라우드 워크 형태의 일도, 전통적인 고용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정부 주도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직무훈련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을 통해, 영상 편집, 사무 자동화, UI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는 취업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기술은 분명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 접근성과 역량 격차
기술이 곧장 ‘기회’로 전환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진입 장벽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은 접근성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면접 시스템이나 온라인 직무 평가 도구가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적합하게 설계되지 않은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화면을 읽지 못하는 구조, 음성 안내가 없는 플랫폼, 키보드만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페이지 등은 정보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전체 국민 평균의 83.5%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고령층보다는 높았지만, 여전히 디지털 접근성 격차는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 기반의 직무가 갖는 역량 요건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기본적인 IT 활용 능력이나 디지털 도구 숙련도가 전제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사전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은 처음부터 진입 장벽을 느끼게 됩니다. 디지털 기초 교육이나 보조기기 지원이 선행되지 않는 한, 기술은 오히려 기회의 문을 좁힐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새로운 직무가 무조건 장애인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챗봇 상담, 데이터 검수, AI 학습용 콘텐츠 분류 등의 직무는 비대면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에게 권장되지만, 실제로는 높은 집중력이나 빠른 반응 속도를 요구하며, 정서적 소진이 큰 작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겉으로는 ‘무난해 보이는’ 일이 실질적으로는 고난이도의 지속적인 훈련과 스트레스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포용을 위한 직무 설계
기술은 본질적으로 가치 중립적인 도구입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이로운지, 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는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설계하고, 누구를 위해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술 기반의 일자리가 장애인에게도 다양한 가능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일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일자리 설계나 접근 방식에서 조금 더 섬세한 고려가 필요해 보입니다. 변화의 중심에 장애인의 목소리와 경험이 반영된다면, 기술이 만들어내는 미래의 일은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